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이 모두 그렇듯, 나 또한 장래에 대한 걱정과 조바심에 시달리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내 일상에 '희(喜)'가 되는 존재는 이름 자체가 '희'로 끝나는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목소리만으로도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여자친구고(^^;), 또 한 사람은 같은 기숙사에 살게 되어 인연을 맺은 성희라는 친구다. 유학을 하는 동안 늘 바랐던 '나랑 동갑이면서도 함께 있으면 배울 게 많은 한국인 동성 친구'가 드디어 생겼다. 성희는 나 처럼 말수가 적은 편이고, 학년상의 나이는 한 살 위인 데다가 나의 베프 중 한 명인 홍기의 학과 선배라 아직 내가 반말을 하는 게 미안하고, 어색할 때도 있지만, 요즈음 이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다른 한국인 친구들로부터 언제 커밍아웃 할 거냐며 놀림까지 받을 정도로...
운동도 같이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학교의 스포츠 센터를 등록했다. 원래는 넓은 어깨를 만들기 위해 수영을 할 계획이었는데 혼자 하려니 영 재미가 없어서 때마침 스쿼시와 테니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던 성희에게 스쿼시를 제안했고, 지난 주말에는 같이 시내에 가서 라켓도 새로 샀다. 새 라켓이 마음에 들어서 방 안에 있는 동안에도 눈에 띌 때마다 자꾸 만지작거리게 된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그립감 때문에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심지어 그립에 피가 묻는 데도 우리는 치고, 또 친다. 라켓이 때리는 공이 '펑' 하고 터지듯, 벽에 맞는 소리에 쾌감을 느끼고, 그만큼 가슴이 '뻥' 뚫리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에 아무리 아프고, 지쳐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스쿼시를 처음 시작하여,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꾸준히 스쿼시장에 다녔다. 그 이후로는 최근까지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애착은 여전히 강하다. 테니스와는 달리 스쿼시 코트는 사방이 벽이라 있는 힘을 다하여 라켓을 휘둘러도 공이 코트 밖으로 나갈 일이 없기 때문에 화풀이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아주 이상적인 운동인 것 같다. 지난 주에 처음 치기 시작한 이후로 네 번밖에 가지 않았지만, 운동량이 워낙 많다보니 벌써 뱃살이 쏙 빠졌고, 점점 되찾아가는 옛 실력 처럼, 심신도 날이 갈 수록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사실 내가 운동을 결심한 이유는 튼튼하고, 군살 없는 몸을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 영국 학생들의 엄청난 체력이 부럽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하키 스틱을 들고 다니는 여학생의 모습이나, 럭비를 방금 막 하고 나온 듯, 진흙으로 범벅이 된 옷을 입고 다니는 남학생의 모습을 거의 매일 볼 수 있다. 영국의 초중고 교육 과정은 체육을 굉장히 중시하고 있고, 대학도 수요일 오후를 학생들이 운동하는 시간으로 지정하여 정규수업을 실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충분한 운동 시간과 시설을 쭉 보장받아왔고, 그만큼 그걸 누린 영국 학생들의 체력은 한마디로 가공할 수준이다. 사나흘 정도는 가뿐히 밤새며 공부할 수 있는 영국 학생들은 열람실 책상에서 잠시 엎드려 자는 외국 학생들, 특히 한국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어디 아픈 줄 알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낼 정도니까... 그런 영국 학생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영국 학생들 못지 않은 체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최근에 나는 절실히 깨달았다.
졸업을 하는 내년 5월까지는 여러모로 고달픈 시간을 보내야 할 듯 하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내 몸과 마음 모두 웃을 수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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